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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알고싶다 구 소련 전투기 대한항공 KAL 007 격추사건 미국 기밀문서 공개

제이팸 2021. 3. 20.

그것이 알고 싶다 그알 에서는 최근 기밀 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를 통해, 83년 KAL 007 격추사건 관련 미소 양국의 초기 대응을 분석하고, 이 날의 슬픈 현실에 대해 진실 규명은 멀어지고 음모론만이 남아버린 이유를 추적한다. 또한, 이로 인해 고통받아온 피해 가족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그것이알고싶다 구 소련 전투기 대한항공 KAL 007 격추사건 미국 기밀문서 공개

 

 

1983년 9월 1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269명의 사람들을 태운 대한항공 007편(기종 747-230B, 기체 등록번호 HL7442)이 사할린 근처 모네론 섬 부근 상공 소련 영공에서 소련 방공군의 Su-15TM 요격기에 격추당해 추락한 사건이다.

그것이알고싶다-KAL-007-비행기
그것이알고싶다-KAL-007-비행기

KAL 007편의 관성항법장치만 켜졌어라도 러시아가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고 민간기로 러시아가 판단해 비행유지를 허가해줬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관성항법장치가 꺼졌을거라고 추정되는 KAL 007기는 구 소련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기지인 캄차카 반도를 지나가려 하고 있었고 미국 정찰기 RC-135는 감시중이었다.그리고 그 치열한 정보 전쟁이 벌어지는 한복판으로 불행하게도 KAL 007은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당시 민항기 조종사들에게 비행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질문을 받은 조종사 대부분이, 같은 목소리로 조종이 아니라 국제선에서 항로입력이라는 대답을 듣게되던 아날로그 시대가 빚은 슬픈 현실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 운행하던 기장은 엘리트로 알려진 인물이라 저 사람이 항로를 완전히 잃어버린걸 끝까지 모르고 다른 사람들과 교신을 했다는 것부터 참 미스테리죠. 당시 기장이 베테랑인지라 항로가 잘못된걸 인식 못할리가 없었을테고 회항하지 않은 것이, 회항 시 받게되는 항공사로부터의 징계가 가볍지 않다는 것도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시 격추시킨 사람이 나와서 인터뷰 하기론 민항기인지 아닌지 애매했지만 어쨋든 아래에서 쏘라고 당시 상황상 자주 남의 하늘에 침범하는 나라들이 있으니 쏘라고 했고 처음에 경고 사격 하였으나 하필 또 밤이라 시야확보가 전혀 안되서 뭐가 날아오는지도 몰랐고 비행기는 그저 가던 길 가려고(길 잃은지도 모르고 ) 속도 올렸고 뒤에서는 그때 도망간다고 간주하여 격추시켜버린 사건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KAL 007 격추사건’이라 불리는 이 슬픈 현실은 왜 발생했던 것일까? 

전투기가 민간 여객기를 공격한 사상초유의 사건이었지만, 당시 미.소로 대표되는 두 진영 간의 냉전 분위기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 대한민국의 상황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더욱이 사건 직후, 탑승객들의 시신이나 유품도 온전히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이 사건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21년, 미 국무부 비밀문서가 공개되다

소련, <대한항공 비행기는 아마 스파이 미션을 수행 중이었을 것이다> 
미국, <이 사건은 소련에 대한 인식을 뒤집을 기회가 될 겁니다>
<핵전쟁의 나락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 문서 내용 中 -

지난 2월 16일. 이 ‘KAL 007 격추사건’과 관련된 미국 국무부의 기밀문서가 공개 되었다. 38년 만에 확인할 수 있게 된 이 문서에는, 당시 냉전관계였던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 슬픈 현실을 어떻게 이용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논의들이 담겨있었는데... 명백한 살인행위라며 앞장서 소련을 비난했지만 뒤로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었던 미국, 그리고 여객기가 미국의 첩보행위를 하고 있었다며 공격의 당위성만을 내세우기 급급했던 소련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사건의 진상 파악과 사후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 당사국이었던 한국이 왜 철저하게 소외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비무장 민항기가 전투기에 요격당한 최악의 항공기 사고는 어째서 국제 정치 관계에 이용되어야만 했을까. 제작진은 이번에 미국에서 새로 공개된 문서를 분석해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았다.

사고 당시 비무장 민항기가 전투기에 요격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자 전세계가 경악했으며 격추 가해자 소련도 이런 어마어마한 참사에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공군의 정찰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잔해를 확인한 뒤 민항기였다는 것을 알아낸 뒤에는 경악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 내용은 군과 정부만이 알고 있었고 유류품들과 잔해 블랙박스를 재빨리 수거해 소련 해체 이후 한국에 반환할 때까지 극비리에 관리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과 소련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소련 정부에 항의하였다. 다만 외교 채널이 없어서 직접 항의하지 못하고 미국을 통해 항의했으며, 사건 다음날 9월 2일 전두환 대통령은 칼기 피격특별담화를 발표하여 소련은 사과하고 모든 책임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알고싶다-대한항공-KAL-007-비행경로
그것이알고싶다-대한항공-KAL-007-비행경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계속되고,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자 소련은 사건 발생 5일 만에 KAL기 격추를 인정했다. 소련은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한 KAL기가 떠나지 않아 적기로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007기를 격추시킨 Su-15의 조종사 겐나디 니콜라예비치 오시포비치(Геннадий Николаевич Осипович: 1944년 9월 25일 ~ 2015년 9월 23일#) 방공군 대령은 007기가 민항기인 줄 몰랐으며, 창문 사이로 어떠한 인적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기체에 대한항공 마크가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1996년에 민항기임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나는 지상에다 그 항공기가 보잉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묻지 않았기 때문에.''
- Kal 007기를 격추한 Su-15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대령 -

미국 측은 KE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을 소련군 교신을 감청하여 알고 있었음에도 처음에 침묵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소련이 계속 격추 사실을 부인하자 감청된 녹음을 공개하였다.

소련 측은 이를 통해 자국의 군사 통신망이 미국에 의해 감청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 군 교신용 주파수를 모조리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미국은 감청을 통한 소련군의 정보수집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홋카이도에 있는 일본 항공자위대 왓카나이 감청기지에서 역시도 소련 전투기와 지상 관제사 간의 대화를 듣고 있었으며, 후에 일본 측이 자료를 자세히 제시해 준 덕분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 후 대한항공은 사고기의 편명인 007편을 영구결번했다. 대한항공의 뉴욕행 노선에서 007편이라는 편명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후속편명은 KE025/026편을 거쳐 1990년대 후반부터는 KE081/082로 변경되었다. 한편 뉴욕노선의 또 다른 편명도 이 사건 때문에 007대신 KE027/028을 사용했다가 KE081/082편으로 변경된 시기에 바뀐 편명이 KE085/086이다.

007편을 격추한 전투기 조종사인 오시포비치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민항기인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데 아무 죄책감도 없었나?'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오시포비치는 당시 007편 꼬리날개에서 민항기 항법 등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찰기인 줄 알고 과감하게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에선 일반 여객기에 여러가지 장비들을 달아 군용 정찰기로 써먹기도 하고, 또 정찰기들을 민항기로 위장시키는 페이크를 자꾸 쳐온 터라 격추 당시에는 민항기인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나마나 또 민항기로 위장한 미군 정찰기겠지'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발사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때마침 소련 정보부로부터 '해당 지역에 미군 정찰기들이 자꾸 싸돌아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 그 지역 방공부대들은 제대로 정신줄 잡고, 걸리는 놈들은 전부 격추시켜버려.'라고 지시를 받은 터라 확신을 가지고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후에 사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본인이 격추시킨 비행기가 알고 보니 민항기로 위장한 군용기가 아니라 진짜 민항기였음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애초부터 항로 세팅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대한항공 기장도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회항하지 않고 엉뚱한데로 날아가고 있는 상태에 비행 라이트도 꺼져있었다.

지도 상으로는 얼마 안되보일지라도 350km이상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서울을 가야하는데 대구로 가는 정도로 기장의 과실도 크다.


구 소련이 IBCM 발사 실험하느라 민감한 상태였다.

해당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험 지역에서 미군정찰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미국 정찰기는 하필이면 KAL 007편이랑 같은 type의 4발기 기체였다.

위급한 상황인데 식사 중이라 상황 파악도 잘 못하던 KAL 007 상황이었다.

구 소련 전투기 파일럿은 충분히 민항기 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좀 더 확인하지 않은 격추로 인한 진급 욕심으로 가득찬 상태였다.

미국도, 일본도 다 감청하면서 알면서도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며 경고해주지 않았다는 총체적인 난국에 수많은 우리 국민이 겪게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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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롭게 발견된 수상한 흔적

당시의 국제적 상황 때문에, 명명백백히 밝혀졌어야 할 사건의 진실이 가려지게 되자, 지금까지도 ‘KAL 007 격추사건’에 대한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탑승객들이 사할린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추측도 계속되었고, 대한항공기가 실제로 첩보 행각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 얼마 전, 서울에 사는 유 씨는 38년 전 KAL 007기의 탑승객이었던 아버지의 유품에 관한 연락을 받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렌터카 카드와 명함이 사할린 네벨스크에서 발견되었다며 한 외국인 신부가 유품 사진을 보내준 것! 사진으로 본 카드의 상태는 물에 빠졌던 물건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양호한 상태. 38년 만에 들려온 뜻밖의 소식에 유 씨는 혼란에 빠졌다. 

유 씨도 사건 당시 KAL기 승객들이 러시아 어딘가에 생존해 있을 수 있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생존해 있던 아버지를 자신이 찾아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발견된 이 카드가 정말 아버지의 것이 맞는 것인지, 아버지의 것이 맞는다면 당시에도 못 찾았던 유품이 어떻게 지금에서야 나타났는지, 당시엔 왜 어떤 유품도 자신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질문이 멈추지 않는다는 유 씨. 유 씨와 연락을 주고받던 외국인 신부는 이내 연락이 끊겼고, 아버지의 진짜 유품을 찾을 길은 묘연해졌다. 

사진으로만 확인한 그 카드와 명함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소련에서 발견되어 일본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가족들 품엔 돌아가지 못한 유류품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상한 흔적에 대한 사실들

사망한 탑승객 중 미국의 로렌스 맥도널드 하원 의원이 있던 것도 음모론의 근원인데 1983년이면 6.25 전쟁 휴전 30주년이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30주년이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이 한국방문을 했었다. 이 비행기에 탑승한 유일한 의원이 맥도널드 하원의원인 것도 미국이 방조했다는 음모론의 불씨다.

다행히 대표단은 10분 뒤 출발하는 다음편 항공기에 탑승한 덕에 주요 의원 몰살이라는 비극은 피했지만 하필이면 맥도널드 의원이 문제의 항공기에 탑승했으니 그래서 어떤 높으신 분들의 암살작전이라는 게 음모론의 요지이다. 추락이 아니고 사실은 캄차카에 착륙했고 탑승객들이 전원 살았으며 맥도날드 의원은 루뱐카에 나머지 승객들은 시베리아 굴라그에 수용되어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헌데 냉전 종식 후 냉전 시대에 자유진영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굴라그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공개되었다. 특히 1970~1980년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미 정찰기 관련 인사들의 이야기는 유족들이 소련의 매장지에 방문할 정도인데, 굴라그 관련 서적에도 KAL기 생존자 관련 증언은 없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들어서 어린이를 포함한 생존자의 이야기를 실어주기도 한다.

이런 종류 음모론도 미국에서는 꽤 퍼져 있었다. 이에 따르면 해상에서 발견된 파편은 소련이 비슷한 기체를 고의로 폭파시켰고 블랙박스는 소련이 당연히 입수해서 처리했다는 논지인데, 위에 서술한 대로 보리스 옐친이 블랙박스를 한국 정부에 넘겨주었고 그것에 따른 분석자료가 나와 있는 현재는 거의 폐기된 음모론이다, 그 폐기된 음모론을 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사실로 방영하는지 의도는 할많하않.

깊은 바다 속, 그날의 진실은 왜 아직 못 찾았나?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나 1988 서울 올림픽에 소련이 참가를 결정하고 소련의 올림픽 참여로 한소관계가 크게 개선되자 노태우 정부는 한소 수교를 추진하며 더 이상 007편 격추 사건을 문제삼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한소정상회담 전날인 1990년 6월 3일 대한민국 정부는 "한소관계의 개선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보장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점에서 불행한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한소관계의 개선 노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고 이 사건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전에 일어났음을 지적하면서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로 소련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도 1990년 한소 수교 당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비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였고, 1991년 한 차례의 추가 수색을 해 007편의 잔해와 유류품 일부분을 수색했다. 소련 해체 이후 1992년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국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접 블랙박스와 유류품을 반환하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예고는 아래와 같다. 애매모호한 결론이라는 당시 통신 내용 및 상당 부분은 이미 이 블로그 위에 적어놓았으니, 다시 읽어보시길 바란다.

세월이 흐르면서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도 붕괴됐지만, ‘KAL 007기 격추사건’의 진실을 찾는 일은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 수립이라는 이유로 또 다시 뒷전이 되었다. 1992년, 방한기념으로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가져다준 블랙박스는 안타깝게도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우리 정부의 자체 조사가 불가능했던 상황. 결국, 격추 된 KAL 007기의 블랙박스 조사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맡았고, 1993년이 되어서야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아쉽게도 ICAO보고서는 KAL기가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한 원인은 조종사의 실수나 기계고장 가능성에 있다는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던 유가족들에겐 부족한 설명이었다.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유가족들은 그 진실이 여전히 알고 싶다. 그리고 남은 소망은, 안타깝게 사망한 탑승객들이 남긴 최후의 흔적들이라도 다시 돌려받는 것.

사건의 진실 규명에도,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3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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